《녹색평론》제100호 2008년 5-6월호  인쇄용  

 

  세계적 식량위기의 원인과 식량주권

  윤병선

 

  우리의 농민들은 그 어느때보다 잔인한 4월을 보냈다.

  사료값은 폭등했지만, 그 사료로 키운 한우값은 폭락해서 상식적으로는 일어나기 어려운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잔인한 4월의 한중간에 이명박 대통령은 ‘해외식량기지 개발’이라는 장대한 계획을 미국행 특별기 안에서 발표하고, “대통령선거 다음날 오고 싶었다”는 미국에 도착해서는, 미국산 쇠고기를 전면 개방하는 것으로 결판이 나 버린 한미쇠고기협상이 타결되었다는 소식을 박수를 받으면서 전했다. 귀국 후에는 질 좋은 쇠고기를 싼 값에 공급하게 되었다며, 한우값 폭락으로 시름에 잠긴 축산농민들뿐만 아니라 광우병 쇠고기로 불안해 하는 국민들을 경악실색케 했다.

  사료값의 급등과 한우값의 폭락은 경제변수의 관점에서는 상반되는 현상이지만, 본질에 있어서는 하나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현재의 식량위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식량공황이 아닌 식량위기

  연일 언론에서 곡물파동을 보도할 정도로 식량위기로 인한 혼란이 세계 도처에서 발생하고 있다. 이집트와 카메룬, 아이티, 세네갈 등에서는 식량폭동이 일어나고 있고, 주요 수출국들은 자국의 안정적인 식량확보를 위해서 수출제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 대통령조차 해외농업기지 개발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면서 ‘식량공황’이라는 잘못된 신조어까지 사용해가면서 현재의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공황’이란 만들어놓은 생산물이 구매력의 부족으로 판로가 없어서 재고가 쌓이는 과잉생산, 더 정확하게는 상대적인 과잉생산이다.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으로 한우고기에 대한 수요가 감소하여 한우값이 폭락하고, 이로 인한 파급이 여타 농업부문에까지 나타나는 현상이 바로 공황이다. 그런데 지금은 곡물에 대한 수요확대가 생산능력을 넘어서서 곡물재고율이 급격하게 하락하면서 곡물가격이 폭등한 것이고, 이러한 상황이 지속될 것을 염려한 곡물수출국들이 자국의 식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서 수출에 제한을 가하는 상황이기에 ‘공황’으로 표현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진정 정부가 지금 당장 걱정해야 할 것은 정부 스스로가 결정한 미국산 쇠고기의 전면수입개방이 가져올 공황이다.

  식량위기로 인해서 세계 각처에서 발생하고 있는 사태들을 언론이 보도하고 있지만, 곡물자급률이 28%에 불과한 우리나라가 한발 여유있게 물러서 있을 수 있는 이유는 주곡인 쌀의 자급률이 그나마 높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식량위기로부터 안전한 것은 결코 아니다. 국제곡물시장은 태생적으로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국제곡물시장의 태생적 불안정성

  국제곡물시장은 기본적으로 가격변동이 심하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 첫번째 이유는 생산량 중에서 무역량이 차지하는 비율은 10~12%에 불과할 정도로 무역량으로 돌려지는 부분이 적어서 변동이 상대적으로 심하기 때문이다. 1980년 이후 약 27년 동안 곡물소비량은 14억 톤 수준에서 21억 톤 수준으로 40% 이상 증가했지만, 같은 기간 동안 곡물무역량은 2억 톤 수준에서 2억5천만 톤 수준으로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이는 곡물이 기본적으로 기초식량이고, 국내 소비가 우선된 후에 그 여유분이 수출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미세한 수급변동으로도 가격의 급격한 변화가 나타나게 된다. 특히 쌀의 경우는 국내소비가 우선되는 국내재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다른 곡물보다도 수급변화에 민감한 취약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둘째로, 주요 수출국이 미국, 캐나다, 호주, 남미, 중국 등으로 한정되어 있고, 가공?유통 부문도 카길과 같은 초국적 농식품복합체들에 의해서 장악되어 있다는 점이다. 옥수수의 경우 미국이 최대수출국으로 세계수출량의 2/3를 차지하고 있으며, 아르헨티나, 중국이 그 뒤를 잇고 있다.(3대 수입국은 일본, 멕시코, 한국) 대두의 경우, 최대수출국은 미국인데(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3.5%), 최근에는 브라질의 생산증가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 아르헨티나까지 합한 3개국이 전체 대두수출량의 90%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 이처럼 곡물수출이 소수 국가에 치중되어 있다 보니 이들 국가에서의 급격한 공급감소(인위적인 수출제한까지 포함)는 세계적인 식량위기로 직결될 수밖에 없다.

  잘 아는 바와 같이 GATT 우루과이라운드는 이처럼 취약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 농산물시장의 자유화를 중심적 테마로 놓고 추진되었던 것인데, 지금과 같은 식량위기 상황에서는 오히려 농산물무역의 자유화를 주창했던 곡물수출국들이 수출을 제한하는 모순이 연출되고 있다. 식량위기 상황에서 곡물수출국은 언제든지 문을 걸어놓을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으면서, 수입국은 과잉상태에서도 수입을 제한할 수 없는 불합리한 규범이 만들어진 것이다. 한국을 거대 농산물시장으로 특별대우하면서 항상 관심을 갖고 압박을 가하고 있는 미국도 국내공급 부족시 정부는 국내경제를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수출제한을 할 수 있는 수출관리법을 우루과이라운드 이전에 이미 준비해놓았다.

  어쨌든 남의 불행을 자신의 행복으로 삼은 미국은 현재의 식량위기를 계기로 농가수입액이 2006년의 1,200억 달러에서 2007년 1,650억 달러로 늘어났는데, 이는 지난 10년 평균보다 50% 많은 금액이다. 또한 미국의 농산물 수출액은 2005년의 625억 달러에서 2007년 819억 달러로 크게 늘었고, 같은 기간 동안 농산물 순수출액은 2005년의 47억 달러에서 119억 달러로 배 이상 증가했다. 농산물 수출액의 증가와 함께 다우 케미컬과 같은 농화학기업들도 최고의 판매액과 이윤을 기록했으며, 카길은 곡물급등에 힘입어 2008년 1/4분기 동안 9억 1,700만 달러의 순익을 달성했는데, 이는 전년 동기간의 5억 달러보다 83% 증가한 액수이다.

 

  투기자본의 투전장이 된 곡물시장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경제의 금융화와 함께 전개되어왔다. 미국의 경우 전체 기업이윤 중에서 금융부분이 차지하는 비중이 1981년 12%에서 20년 만에 39%로 증가했다. 2007년 말 전세계 지구상의 모든 사람의 일인당 금융자산의 가치는 11만4천 달러로, 이는 전세계 사람들의 1년 소득합계의 15배에 해당할 정도로 경제의 금융화가 확산되고 있다.

  2007년도 말 기준으로 미국의 주식가격의 합계는 16조 달러에 달하지만, 같은 나라에서 생산된 옥수수, 대두, 소맥 생산액은 1천억 달러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는 미국 내 금융자산과 대비해 볼 때 0.6%에도 지나지 않는다. 또한, CBOT(시카고 상품거래소)에서 하루 동안 거래되는 옥수수, 대두, 소맥의 금액도 외환시장에서 거래되는 금액(약 3조 달러)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전체 금융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이처럼 낮은 상황에서 금융시장의 상황악화로 투기자금이 곡물시장으로 유입될 경우에는 얇은 시장(thin market)이라는 속성을 가지고 있는 곡물시장은 요동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원유시장에서 시작한 투기자본의 상품투자는 현재 곡물시장으로 그 중심이 옮겨졌다.

  2002년 원유를 시작으로 금속, 곡물로 투기자본이 이동했는데, 이는 이자율의 하락과 달러가치의 하락이 주원인이다. 특히 2006년 9월 호주에서 발생한 가뭄을 계기로 소맥가격이 상승하자 투기세력마저 가세하였다. 옥수수의 경우 CBOT 순매입건수는 2006년 1월 3일의 4만2천여건에서 2008년 3월 4일에는 37만6천여건으로 급증하였으며, 대두의 경우는 2006년 10월 17일 순매입(1만1천여건)으로 전환된 이후 순매입세가 지속되고 있으며, 2008년 3월 4일에는 12만7천여건으로 2006년 10월 17일 대비 11.5배가 증가했다. 투기자금뿐만 아니라 상품지수에 연동된 투자신탁인 인덱스펀드 등을 통하여 기관투자가나 연금기금 등의 투자자금도 가세했는데, 옥수수, 대두, 소맥, 육우, 돼지에 대한 인덱스펀드의 총투자금액은 2006년의 100억 달러에서 2007년에는 420억 달러로 급증하였다. 곡물시장이 가지고 있는 구조적 취약성 때문에 지적되어온 투기자본의 유입 가능성이 현실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또하나의 음모-식물성 연료 정책

  아무리 투기자본이 발호할 수 있는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는 곡물시장이라 하더라도 시장조건이 여의치 않다면, 즉 실물측면에서 공급여력이 충분하거나 엷은 수요층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투기자본은 일시적인 공급핍박을 이용하여 거품을 만들고, 그 거품이 사라지기 전에 발 빠르게 손을 털고 나갈 것이므로 현재의 곡물가격 급등도 일시적인 현상으로 파악해도 될 것이다. 그러나 현재는 곡물생산량이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요량이 이를 능가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표〉참조)

  특히 신흥공업국, 그 중에서도 중국의 경제성장과 고유가와 결합된 식물성 연료의 공급확대가 곡물수요를 급격하게 확대시키는 압력으로 작용했다. 중국은 인구증가와 함께 경제성장에 따른 식생활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쇠고기 1kg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8~11kg의 옥수수가 필요하기 때문에 쇠고기 소비량이 증가하면 곡물에 대한 수요는 가속적으로 증가하게 되는데, 최근 중국의 육류소비량은 증가추세에 있다. 이로 인해 중국의 대두수입량은 10년 전에 비해 9배로 늘어났다.

  식물성 연료로 사용되는 옥수수에 대한 수요의 급증은 옥수수뿐만 아니라 대두나 소맥의 가격급등을 가져왔다. 특히 세계 최대의 옥수수 수출국인 미국은 2006년만 하더라도 옥수수의 수출량과 식물성 연료로 사용된 옥수수의 양이 거의 같았지만, 2007년 1월 부시 미대통령이 일반교서연설에서 이른바〈20 in 10〉을 통하여 10년 내에 가솔린의 소비량을 현재보다 20% 삭감하기 위해서 연간 350억 갤런의 식물성 연료(에탄올)를 공급한다고 발표하였고, 이를 계기로 식물성 연료로 사용되는 옥수수의 양이 수출량보다 많아지게 되었다. 미국정부는 작년 12월에는 2020년에 360억 갤런의 식물성 연료 이용을 의무화하는 것을 법률로 정했다. 그런데, 360억 갤런의 식물성 연료를 생산하려면 지금 생산되고 있는 옥수수의 거의 전부를 소비해야 하는 상황이다. 2007년에 생산된 옥수수 전부를 사용하더라도 미국 내 에너지 수요의 15%밖에 감당할 수 없다. 식물성 연료로 온실가스의 배출을 줄일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지만, 그렇지 않다는 반박도 만만치 않다. MIT에서 나온 보고서에 따르면, 가솔린 대신 옥수수나 사탕수수를 이용하여 만든 식물성 연료의 생산은 비료에 대한 수요의 증가와 작물재배를 위한 삼림의 파괴, 작물재배를 위한 관개시설의 확대로 인해 오히려 화석연료의 사용을 증가시킬 것이라고 한다.

 

  <표> 세계 곡물의 수급 추이 (단위:백만톤, %)

 

생산량

소비량

재고율

1999/00

1872

1865

31.5

2000/01

1843

1863

30.4

2001/02

1874

1902

28.3

2002/03

1821

1913

23.3

2003/04

1862

1950

18.4

2004/05

2044

1995

20.5

2005/06

2016

2031

19.1

2006/07(E)

1991

2044

16.5

2007/08(P)

2076

2105

14.6

*주: 곡물년도 소맥(6-5월), 옥수수(9-8월), 대두(9-8월)
     E(추정치), P(전망치)
*출처 http://www.usda.gov/oce/commodity/wasde/latest.pdf

 

  식물성 연료 정책의 배후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정부가 이처럼 식물성 연료에 집착하게 된 계기는 고유가와 관련되어 있다. 부시는 해외로부터 석유를 확보하고자 하는 정책에 힘을 두었으나, 이라크 공격을 통한 석유공급원 확보 계획이 어긋나고, 이라크전쟁에 대한 미국 국민의 비판이 높아졌을 뿐만 아니라 가솔린 가격도 고수준이 계속되자 농업관련 산업계의 표를 획득하기 위한 선거대책으로 식물성 연료 정책을 채택하였다. 그리고 이는 미국정부의 식물성 연료에 대한 보조금으로 연결되었다. 미국정부가 식물성 연료에 보조금으로 쏟아부은 돈은 2006년 1년 동안 무려 70억 달러에 이른다. 이는 1갤런의 에탄올에 1.45달러의 보조금을 준 것에 해당한다. 그리고 자국의 식물성 연료생산을 보호하기 위해서 수입되는 식물성 연료에 대해서는 54센트의 관세를 부과했다. 이로 인해 2007년도는 식물성 연료를 생산하는 기업과 식품을 가공하는 기업 사이에 로비전이 그 어느 때보다 심각했던 한 해였다. 그러나 이 로비전쟁은 식물성 연료를 생산하는 기업의 승리로 끝났다. 부시 미대통령의 동생인 젭 부시 플로리다 주지사가 “서방세계의 가솔린 풀에 에탄올의 사용을 증진”시킨다는 미션을 가지고 있는 ‘아메리카간 에탄올 위원회’의 공동의장을 맡고 있는 것을 우연으로 보기는 어렵다. 카길과 함께 세계 최대의 농식품복합체 중의 하나인 ADM은 미국 에탄올의 28%를 생산하고 있는데, 에탄올에 대한 보조금을 계속 받기 위해서 이들 에탄올 생산자들로 조직된 ‘재생가능연료위원회’는 막대한 금액의 정치자금을 공화당에 후원하고 있다. 엑슨모빌, 셰브론, BP 등도 식물성 연료산업에 가담하고 있는데, BP의 경우, 5억 달러의 연구비를 대학에 기부하는 등 정계와 학계 모두를 대상으로 하는 전방위 로비를 펼치고 있다.

  미국정부의 식물성 에탄올연료를 생산하기 위한 보조금의 결과 미국의 식물성 연료산업은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현재 공사중에 있는 정제시설의 숫자는 지난 25년간 건설된 시설의 숫자보다 많다. ‘국제식량정책연구소(IFPRI)’의 예측에 의하면, 만일 현재보다 두배로 식물성 연료시설을 확대한다면 2020년이 되면 옥수수가격은 72% 상승하고, 현재의 시설을 유지하더라도 26% 상승할 것이라고 한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식량위기

  IFPRI에 의하면 현재의 식량위기는 1970년대 초의 상황보다 훨씬 심각할 뿐만 아니라, 더욱 장기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곡물가격이 상승하더라도 가격상승에 따른 공급증가는 그다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같은 기관의 분석에 의하면 10%의 가격상승이 불과 1~2%의 공급증가를 가져오는 것으로 보고 있다. 더욱이 지구온난화를 감안하면 2020년까지 곡물수확량이 1/6 정도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이처럼 식량위기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힘을 받는 이유 중 하나는 “이제는 8억대의 자동차와 세계의 가난한 20억의 인구가 똑같은 상품, 똑같은 곡물을 놓고 경쟁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있기 때문이며, 우리가 “연료와 식량이 서로 바뀔 수 있는 새로운 경제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레스터 브라운)이다. 연료와 식량 사이의 경쟁이 격화된 이유는 곡물재고율이 바닥에 근접하던 시점에 곡물수출 대국 미국에서 식물성 연료 정책이 계획되었기 때문이다. 곡물재고율(재고량/소비량, FAO에서는 최소 17% 내외를 안정적인 수준으로 보고 있음)이 2000년만 하더라도 31.5%에 달했다가 감소추세를 보이면서 2004년 18.4%로 바닥에 이르던 시기에 부시 행정부와 의회에서 식물성 연료 확대정책을 계획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헨리 키신저와 닉슨 행정부가 초국적 농식품복합체인 카길과 ADM의 공모 속에 러시아의 석유를 서방으로 판매하는 조건으로 막대한 양의 미국의 곡물을 판매했던 1972년 식량위기 당시와 현재의 상황은 매우 흡사하다. 미국은 1972년의 식량위기를 계기로 PL480호 등을 통해 무상 또는 유상으로 원조(물론 꼬리표가 붙은 원조였지만)해오던 잉여농산물을 상업베이스로 전환했다. 그리고 농산물의 과잉생산을 억제하기 위해 추진해왔던 식부면적 제한정책 대신에 농업생산을 적극적으로 확대하여 이를 수출산업화하는 식량무기(green power) 전략을 채택했다. 즉, 1970년대까지의 미국 농업정책은 국내 농업부문의 안정화에 초점이 두어졌기 때문에 수출과 식량원조는 자국의 잉여농산물 관리의 부산물 정도로 여겼으나, 1973년 농업법(The 1973 Farm Bill)을 통하여 생산제한을 해제하고, 잉여농산물을 처리하는 메커니즘도 상업베이스의 수출로 전환하였다. 이와 함께 카길, ADM, 콘아그라와 같은 초국적 농식품복합체들도 일제히 자유무역의 나팔수로 등장했다. “개도국에서 가장 절실한 농업적 과제는 국내에서 소비되는 식량을 생산할 능력을 개발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는데,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각 나라는 국내에서 가장 생산력이 높은 품목을 집중적으로 생산해서 교역해야 한다. …생계형 농업은 자원의 오용을 부추기고 환경을 망칠 뿐이다”라는 휘트니 맥밀런 카길 회장의 말도 농산물의 자유무역과 녹색혁명형 농업을 전파하기 위한 협박이었고, 이 협박은 초국적 농식품복합체들이 현재의 국제곡물시장을 좌지우지하는 보이지 않는 거인으로 탄생하도록 하는 데 기여했다.

 

  유전자조작 곡물의 공세

  현재의 식량위기 사태를 계기로 또하나의 음모가 진행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현재의 식량위기 사태를 호기로 이용하려는 집단은 카길, ADM과 같은 초국적 농식품복합체 외에도 또 존재하고 있다. 몬산토와 신젠타 등 이른바 바이오메이저로 불리는 집단이 그들이다. 유전자조작(GM) 옥수수 재배면적 중 97%가 몬산토의 GM종자를 사용하고 있으며, GM대두의 경우에도 몬산토가 91%를 지배하고 있다. 2007년 기준으로 GM작물은 23개국에서 재배하고 있으며, 면적은 전년도보다 12% 증가한 1억 1,430만 헥타르에 이르고 있다.

  지금까지 초국적 농식품복합체가 농산물의 자유무역과 녹색혁명형 농업의 확산을 외쳤다면, 이제 농업생명공학기업들이 그 자리를 대신해서 GM농산물의 확산을 부르짖고 있는 것이다. ‘녹색혁명’을 통해서 생태계의 질서를 뿌리째 흔들어놓았던 농화학업체들이 이제는 바이오메이저가 되어 식량위기를 미리 예견이나 했다는 듯이 생명유전공학을 내세워 식량위기의 해결사로 자처하고 나선 것이다.

  한국은 그 어느 나라보다 앞서서 이에 응답했다. 한국전분당협회 소속업체들은 5월부터 전분?전분당 원료용으로 GM옥수수를 들여오기로 결정한 것이다. 녹색혁명형 농업을 주도했던 국제쌀연구소는 GM쌀이 현재의 식량위기에 대한 해답이 될 수 있다면서 GM쌀의 개발과 보급을 촉진하기 위한 컨소시엄을 이미 구성했다. 한술 더 떠서 농업생명공학 응용을 위한 국제서비스(ISAAA) 의장을 맡고 있으면서 GM작물 전도사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제임스(Clive James)는 “GM작물이 12년 동안 주로 아메리카 대륙에서 상업적으로 재배되어왔지만, 앞으로 10년은 아시아의 해가 될 것”이라고 호언하고 있다. 이는 GM쌀의 확산을 염두에 둔 발언이라고 할 수 있다. 베이어 크롭사이언스가 개발한 GM장립종 쌀인 LL601이 2006년에 미 농무성과 FDA로부터 승인을 받았고, 미국의 알칸사스 주와 미주리 주에서 비(非)GM쌀 경작농민들이 자신들의 쌀이 GM쌀에 의해 오염된 것을 알고 집단소송을 제기하는 사건이 일어날 정도여서, GM쌀이 우리의 식탁을 점령할 날도 얼마 남지 않은 불안한 상황이다.

 

  식량안보와 식량주권

  식량자급률이 28%에 불과한 한국의 입장에서 현재의 식량위기가 지속된다는 것은 큰 재앙이다. 가까스로 자급을 이루고 있는 쌀만 보더라도 상황이 좋은 것은 아니다. 돌이켜보면, 그동안 쌀만이라도 지키고자 노력했던 농민들의 처절한 저항이 있었기에 그나마 지금의 상황이 유지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쌀 관세화에 반대하며 여의도에서 대규모 집회를 이끌었던 농민단체들에 대하여 보수신문은 말할 것도 없고, 일부 시민단체조차도 농민집회를 ‘아스팔트 농사’라고 비아냥거렸던 시기도 있었다. 그렇게 힘겹게 지켜냈던 쌀이지만, 지금의 패러다임이 지속된다면 옥수수와 밀에서 연출되는 상황이 쌀에서도 연출될 수밖에 없다.

  그나마 희망의 메시지를 들을 수 있다면 그것은 국제연합 식량농업기구(FAO)와 세계은행(IBRD), 세계보건기구(WHO)가 2002년에 공동으로 구성한 연구기구인 ‘개발을 위한 농업기술과 과학에 대한 국제평가(IAASTD)’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이다. 이 보고서는 “농업시장이 기본적인 인프라를 갖추지 못한 상황에서 국제경쟁에 개방되는 것은 빈곤 퇴치와 식량안보, 그리고 환경문제에 장기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며 농업 자유무역주의에 경고를 보낸 것이다. 또한 이 보고서는 “지금과 같은 농업 생산과 분배의 흐름은 우리의 자원을 낭비하고 아이들의 미래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며 “식량시장의 세계화가 가속화되고, 각국의 식량수입이 증가되면서 어떤 나라도 식량위기로부터 안전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물론 이 보고서에 대하여 농산물수출 대국인 미국, 캐나다, 호주 등은 보류의견을 제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어쨌든 초국적 농식품복합체와 거대 농산물 수출국에 의해서 편제되어온 현재의 농식품체제에 대한 농민단체들의 비판이 받아들여졌다는 점에서 의미 깊은 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농산물 수출국의 이데올로기라고 할 수 있는 식량안보(food security)라는 개념 대신 식량주권(food sovereignty)이 이를 대신해야 한다. 식량안보는 1996년 세계식량정상회의의 ‘로마선언’과 ‘행동계획’에서 강조된 개념이다. 이 정상회의에서 전세계 176개국 정상들은 2015년까지 굶주리는 사람들의 숫자를 반으로 줄이겠다고 합의했지만, 오히려 기아인구는 증가했다. 식량안보의 달성수단으로서는 식량수입과 재고관리, 국제무역과 더불어 적절한 국내생산의 필요성이 강조되는데, 이는 농산물 수출국과 농산물의 자유무역을 지렛대로 이윤의 극대화를 위해 행동하는 초국적 농식품복합체의 이해를 반영한 개념에 불과하다. 식량안보는 농업관련 산업에 의거한 모델이며, 녹색혁명형 농업에 뿌리를 둔 모델일 뿐이다. 식량안보는 국민에 대하여 식량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을 보장한다는 것이므로, 안정적으로 수입할 수 있다면 ‘자급’이라는 개념은 무시된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와 같은 식량위기 상황에서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무개념으로 되어버린다.

  이에 대해 1996년 세계식량정상회의에 대항하여 개최된 NGO 세계포럼에서 비아 캄페시나가 처음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식량주권’ 개념은 식량안보의 전제조건으로서 농민을 위한, 농민의 정치적?경제적 권리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식량안보가 농업관련 산업의 모델에 의존하고 있는 반면, 식량주권은 농생태적 관계에 근거하고 있다. 식량안보가 녹색혁명형 농업에 의존하고 있는 반면, 식량주권은 생태적인 유기농업에 근거하고 있다. 또한 식량안보는 세계 농식품체제를 전제로 하고 있지만, 식량주권은 지역 농식품체제를 근거로 하고 있다. 따라서 식량주권은 현재의 식량위기의 대안적 준거를 제공한다고 할 수 있다.

 

  암담한 현실

  그러나 최근의 식량위기에 대처한다면서 한국정부가 내놓는 대응책은 과거의 구태의연한 식량안보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어떻게 자급능력을 높일 것인가라는 진지한 고민을 하기보다는 ‘식량자원’이라는 말을 앞세우면서, 이를 ‘자원 빈국(貧國) 한국’이라는 형해화된 이데올로기와 결합시키면서 문제의 본질을 회피하고 있다. 그간의 살농(殺農)정책의 결과로 빚어진 경지이용률 하락과 휴경지 증가, 녹색혁명형 농업의 유산인 과도한 수입사료 의존이라는 핵심적인 문제를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해외농업기지 개발이라는 외적인 문제해결 방식을 들이대면서, 우리 내부의 역량강화에 바탕을 두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은 애초부터 뒷전으로 제쳐놓을 심산이다. 백번 양보해서 해외농업기지 개발에 나서서 몽골과 연해주, 동남아 등에 땅을 확보한다손 치자. 새로운 경작지는 기존 경작지로부터 멀리 떨어져있기 때문에 저장?수송 등에 필요한 기반시설을 갖추려면 막대한 사회간접자본과 장시간이 요구될 수밖에 없다. 종자?비료?농기계에서 생산?가공?유통?판매 등의 전후방산업 연계를 위한 부담까지 고려한다면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더군다나 식량위기 상황에서 자국의 곳간을 지키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고, 식량 때문에 유혈사태마저 벌어지고 있는 마당에 한가롭게 자기 나라 땅에서 생산된 곡물을 다른 나라로 내보낼 정부가 존재하겠는가? 19세기 인도와 제정러시아에서 벌어졌던 기아수출이 21세기에도 가능할 것으로 생각한단 말인가? 만일 그렇게 생각한다면 역사인식도 문제이지만, 지극히 비도덕적이라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또한, 농림수산부에서 새롭게 이름을 바꾼 농림수산식품부가 지난 3월 18일에 보고한 주요업무내용도 우리를 암담하게 만들기는 마찬가지다. 신문보도에 따르면 카길과 같은 거대 농식품복합체를 육성하겠다는 것이 주요업무계획에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수입국 농민뿐만 아니라 미국과 같은 거대수출국의 농민까지 압박해온 농식품복합체를 농림업무 주무관청이 앞장서서 육성하겠다고 하니 푸줏간 소조차 웃을 노릇이다. 아마도 농식품복합체를 농업의 6차산업화를 꾀할 수 있는 농민적 조직으로 파악했던 모양이다. 국제기구조차 농산물 자유무역의 신화에서 벗어나고 있는 마당인데, 농산물의 자유무역화를 위해서 온갖 로비를 다 하고 그로부터 혜택을 누려온 초국적 농식품복합체가 우리의 농업모델이라면 식량주권은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기에 해결책은 우리 안에서 찾아야 한다. 식량주권도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것이고, 국민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윤병선 ― 건국대 교수.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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